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그리스 (문단 편집) == 경제 ==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 경에 경제적으로 정점을 찍었다. 전체적인 경제 규모로만 보자면 당연히 인구 수가 압도적이었던 [[이집트]]나 [[페르시아]]에 밀렸지만 개개인의 부유함으로만 따지면 웬만한 타국인들보다도 훨씬 부유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eighing_merchandise_Met_47.11.5.jpg|height=3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ncient-Greek-Money.jpg|height=300]]}}} || || '''{{{#fff 상업행위를 묘사한 도자기.}}}''' || '''{{{#fff [[아테네|{{{#fff 아테네}}}]]의 [[드라크마|{{{#fff 드라크마}}}]].}}}''' || 그리스의 지도를 잘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산지 지형에다가 토질도 썩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그리스인들은 저들이 사는 땅을 거칠다는 뜻의 '스테노코리아'(στενοχωρία)'라고 부르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기온이 뜨겁고 화창한 그리스 지방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 [[포도]]나 [[올리브]]였는데, 그외에도 과수원이나 정원에서 [[허브]]를 재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주식이 될만한 [[밀]]이나 곡물이 재배가 제대로 되지 못해서 식량들을 소아시아나 이집트에서 수입해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참고로 척박한 그리스 땅은 그리스인들이 활발히 해상무역에 나섰던 이유기도 하다. 하도 땅이 척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통 그리스인들의 80% 가량이 농업에 종사했다. 가을의 시작과 겨울의 끝에 [[올리브]]를 수확했고, 봄에는 휴경지로 만들어 땅을 쉬게 만들었고 여름에 주식인 밀을 수확했다. 대부분의 토지는 귀족 소유였고, 그리스 농민 상당수는 이 귀족들의 땅을 빌려서 소작하는 구조였다. 결국 이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이 지극히 심해지며 하위 계층들의 불만이 터져나오자 [[아테네]]에서는 [[솔론]]의 개혁을 통해 귀족들의 토지를 빼앗아 강제로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솔론의 개혁 이후 시간이 흐르자 다시 귀족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독점하게 된다. 다만 고대 로마 시대와는 달리 토지의 편중이 심하지는 않았고 은근히 자영농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스 경제에서 가장 유명한 게 무역이다. 그리스에서는 '엠포로이( μποροι )'라고 부르는 상인 계급이 존재했는데, 이들이 왕성하게 지중해와 흑해를 돌아다니면서 무역을 하면서 그리스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식민도시들과 무역소들이 건설되기도 했다. 당시 그리스 폴리스들은 초창기에는 딱히 상인들에게 관세를 걷지 않거나 낮은 관세를 물렸는데, 아테네의 주요 항구였던 피레우스의 경우 1% 정도의 관세를 물렸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금은 점점 늘어났다. 기원전 413년에는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해체로 인한 세액 감소를 메꾸기 위해서 관세를 5%로 크게 늘렸고, 이후 다른 그리스 폴리스들도 점점 세금을 물리면서 상인들에게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더욱 늘어났다. 그리스에서는 [[드라크마]]라는 통화를 썼다. 화폐라는 개념 자체는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게 나중에 [[아케메네스 왕조]]를 거쳐서 그리스까지 들어오면서 화폐가 그리스에서도 쓰이게 된 것이다. 아테네처럼 무역이 발달한 도시들이 가장 많이 쓰기 시작했고 기원전 550년 경에는 거의 모든 폴리스에서 통화를 발행했다. 그 유명한 '올빼미가 새겨진 아테네 은화'가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때 이야기다. 이 아테네 은화는 처음에 금과 은의 합금으로 만들어졌다가 후일 순은으로 주조되었고, 주로 라우리움에서 채굴된 은으로 만들었다. 참고로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은화를 주조할 능력이 많았던 지방은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였다. 이 지방들에 워낙에 은광과 각종 광산들이 넘쳐났기 때문. 어쨌든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화폐를 굉장히 애용했고, 심지어 저 바다 너머의 페르시아에서도 그리스 은화를 쓰곤 했다. 당시 페르시아에서도 '다릭'과 '시글로이'라는 금은화를 발행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발행량이 적었기에 그 대용품으로 그리스 화폐를 사용했다.[* 당시 그리스와 적국 관계였던 페르시아는 그리스 화폐를 쓰는 걸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그래도 별 수단이 없어서 그냥 놔두었다.] 무역이나 상업에 비하면 딱히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그리스에서는 공예와 수공업도 굉장히 규모가 컸다. 하지만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수공업을 천대하는 경향이 강했다. 직조업과 제빵업은 기원전 6세기까지만 해도 여성들만 하는 천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경제 규모가 커진 이후에도 노예들만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리스 시민들은 직접 무언가를 제작한다기보다는 노예들을 대량으로 들인 후에 이 대형 작업장에서 나오는 수익을 받아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장 비싼 자줏빛 염료인 '티리안 퍼플'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이 대형 작업장에서만 만들어졌다. 소규모 작업장의 경우 이 비싼 염료를 조달할 형편이 못됐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점토, 금속, 가죽, 나무 등을 이용해서 뭔가를 만드는 걸 천박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리스 도자기나 그릇들은 모두 노예들이 제작한 것들이다. 도자기 도공의 경우 대부분이 극소수의 장인과 휘하 노예들로 구성된 소규모 작업장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